분당 대광사


대한불교 천태종 대광사

동양 최대 미륵대불 도량
천태종 역사

분당 대광사

천태종의 제 4대 조사인 지의대사는 중국 천태종의 실질적인 개조(開祖)로서 천태교학을 완성하였습니다.
'지자대사'는 교학적 토대를 통해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마련하고 일생을 통해 자리이타행을 실천했습니다.

천태종의 제 4대 조사인 지의대사는 중국 천태종의 실질적인 개조(開祖)로서 천태대사 또는 지자대사라고도 합니다. 형주(荊州)사람으로 속성은 진(陳), 자(字)는 덕안(德安)으로 천태교학을 완성하였습니다.

538년에 태어나 부모님의 여의고 18세에 출가하여 지의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이후 혜광율사에게 구족계를 받은 뒤에 560년 광주(光州) 대소산(大蘇山)의 혜사대사 문하에서 수행하여 법화삼매를 얻고 스승의 인가를 받았습니다.

31세에 스승과 헤어져 금릉 와관사에 머물며 법화경, 대지도론, 차제선문 등을 강설하였습니다. 38세에 천태산에 들어가 화정에서 두타행의 고된 수련을 하고, 수선사를 세웠습니다. 본래 천태산은 도교의 성지였으나, 지자대사가 천태산에 머무른 이후 천태산은 천태종의 본산이 되었으며, 지자대사는 천태대사로 불릴 만큼 천태산과 관련이 깊습니다.
578년 법화문구를 강의하고, 591년 진왕 광의 부름을 받고 왕에게 보살계를 베풀어 지자대사의 법호를 받았습니다. 이후 남악으로 가서 혜사대사의 은혜에 보답하고, 다시 고향 형주로 가서 옥천사를 창건했습니다. 593년에 옥천사에서 법화현의를 강의하고 이듬해에 마하지관을 강의했습니다. 이후 양주(楊州)로 가서 정명소를 진왕 광에게 올리고, 595년 천태산으로 돌아가 황폐해진 절을 수리하고 제법십조를 지었습니다. 이후 병을 얻어 석성사에서 입적하셨는데, 입적 후 진왕이 대사의 뜻을 받들어 천태산에 국청사가 세워지고, 천태종의 근본 도량이 되었습니다.


대각국사 의천대사는 당시 혼란했던 고려불교를 하나로 통합하고 바로잡기 위해 6세기경 천태 지의가 개창한 천태종을 한국에 들여왔습니다. 천태사상은 학문과 수행을 두루 겸비한 새로운 불교정신이었으며 불교사상을 모두 아우르고 통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태종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용수보살의 맥을 타고 천태산의 지자대사와 대각국사 의천대사를 통해 불교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는데, 이를 근현대사 이후 소백산에서 중창하신 분이 바로 상월원각대조사입니다. 천태교학은 1세기 경의 용수보살의 공사상과 중관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6세기 경 중국의 천태대사가 장통별원의 화법사교와 화의사교를 바탕으로 오시교판을 체계적으로 확립하였습니다.


지자대사는 오시교판 등 천태교학을 확립했을 뿐 아니라, 8년동안 ‘와관사’에서 중생을 위한 교화활동을 펼치면서 백성들의 의지처가 되는 등 스승 혜사대사와 마찬가지로 중생들을 위한 불교교화행을 실천하였습니다. 또한 법화문구, 법화현의, 마하지관을 강의하였는데 이를 법화삼대부 또는 천태삼대부라고 하고, 장안관정이 이를 기록한 이후에는 법화사상의 중심되는 저술이 되었습니다.
지자대사는 제 4대 조사이지만 천태종은 실질적으로 천태지자대사에 의하여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남북불교는 남조의 이론적 불교와 북조의 실천적 불교로 서로 대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지자대사는 남조불교와 북조불교를 융합하여 천태종을 개창했는데, 이는 한쪽에만 치우친 문화적인 차이를 통합한 것입니다.
지자대사가 천태학을 교학적 체계로 완성함으로써 중국의 다른 종파들도 많은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 인도불교를 중국의 주체적인 불교로 확립시키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교학적 토대를 통해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마련하고 일생을 통해 자리이타행을 실천한 지자대사는 중국의 작은 석가모니라고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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