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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광사 작성일17-01-02 11:05 조회4,7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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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문학 - 전현수 박사 ‘내가 체험한 나라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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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불교는 마음의 종교’라는 말을 한다. ‘팔만대장경을 한 마디로 말하면 마음이다’라는 말도 한다. 도대체 마음이 무엇이기에? 선불교의 최대 관심사가 마음인 이유는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면 바로 부처를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음은 그렇다 치고, 몸은 어떤 것인가? 내 몸은 어떤 것이기에 나를 이루고 있는가? 이 역시 쉬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이다.

몸과 마음, 나를 이루고 있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정체를 분명히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또한 몸과 마음이다. 부처님도 출가하여 처음에는 이러한 문제에 집중했고 당시의 수행풍습에 따라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고행을 했다. 진리는 몸에 있는가 마음에 있는가? 몸은 내 것인가 내 것이 아닌가? 이 문제는 수학의 공식처럼 풀어지는 것도 아니고, 불변의 답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모호하다. 다만, 몸과 마음의 정체를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면 한 번 관심 기울여 볼 만할 것이다. 몸과 마음의 운영이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대광사가 7월 24일에 개최한 인문학 특강에서 그 단초를 찾아보자.

자기 자신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몸과 마음입니다. 몸이 있고 마음이 있어서 ‘나’라는 존재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 이 둘은 나와 어떤 관계일까요? 몸이 자신의 말을 잘 듣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몸이 내 것인가 아닌가를 절실하게 느낄 때는 아플 때입니다. 수술대에 누워 있을 때 ‘몸이 내 것이 아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죠. 그런데 또 다시 몸이 건강해지면 그걸 잊어버리고 몸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건강할 때도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 몸과 마음의 관계를 제대로 보는 눈이 생기는 겁니다.

몸은 두 가지 속성에 따라 움직입니다. 우선 몸은 조건에 따라 생명활동을 활발히 합니다. 그것은 중립적이고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몸은 그냥 있는 것입니다. 마치 물건을 담아 놓은 자루와도 같이 말입니다. 저는 몸을 자루에 비유합니다. 자루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누가 들어서 옮겨야 합니다. 그렇듯이 몸은 어떤 조건이 주어져서 움직이게 되어야 움직이는 겁니다. 즉 몸은 스스로는 자루처럼 가만히 있는 그런 존재이지만 어떤 조건에 따라 활발한 생명활동을 하는 겁니다.

몸과 마음의 속성과 작용
이 두 가지 속성에 대해서 마음이 작용을 합니다. 첫 번째는 몸에서 일어난 생명활동에 대해 반응을 하는 것이 마음의 몫입니다. 어떻게 반응을 하느냐, 심장이 쾅쾅 뛰면 어떤 사람은 ‘이러다 내가 죽는 것이 아니냐’ 하며 예민한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심장이 좀 이상하다 뭔 이유가 있겠지. 내일 병원에 가봐야지’ 하면서 좀 느긋하게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마음이 몸에 대해서 하는 작용입니다.

두 번째 작용은 무엇인가? 몸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몸은 자체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마음의 작용에 따라 움직입니다. 마음이 없이 몸은 절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것은 두 가지를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보행명상을 해보면 발을 들려고 하는 의도에 의해 발을 들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의도가 없으면 발은 들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그 범죄는 몸이 스스로 가서 저지르는 게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 와 계시는 여러분들도 여기로 오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몸을 움직여서 오신 것이지 몸이 스스로 온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배가 조금만 고파도 짜증을 냅니다. 그는 배고프면 짜증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부터 배고픔이라는 생명활동에 대해 짜증을 내는 마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보면 어떤 반응이든 다 마음의 작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것이냐 하는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몸이 갖는 속성처럼 마음에도 마음의 속성이 있습니다. 마음은 내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가진 속성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마음에도 내 것이 하나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무아(無我)라고 합니다. 몸과 마음이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바로 무아입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고 몸과 마음의 영향을 받는데, 그것을 우리가 눈꼽만큼도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몸은 몸의 원리대로 움직이고 마음은 마음의 원리대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 명상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4가지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업이 만드는 물질입니다. 예를 들어 눈이라고 할 때 눈은 보는 기능과 살덩어리로서의 눈이 있습니다. 여기서 보는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눈 감성물질’이라고 합니다. 생소한 용어일 수 있습니다만, 눈 뿐 아니라 코·귀·혀·몸·정신의 감각기관을 포함한 모든 신체 기능을 활발하게 이루는 것이 업에 의해 형성되는 것입니다. 업이 다하면 생명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생명기능을 만드는 것이 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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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이나 명상 등의 수행을 깊이 해 보면 ‘최초의 몸’이라고 하는 이 최초의 현생이 과거생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보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이나 아라한들은 다음 생을 만들지 않습니다. 업이 없기 때문에 다음 생에 들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열반에 든다고 하는 겁니다.

다음으로는 마음에서 만드는 물질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내면 그것이 만들어내는 물질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지면 몸도 무거워집니다.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 그것을 만드는 물질이 마음에서 나오는 겁니다. 좋은 마음을 내면 몸이 가벼워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탐진치가 만드는 물질이 있고, 그것이 좋은 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됩니다.

다음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이 만드는 물질이 있습니다. 또 물질자체가 만드는 물질이 있습니다. 물질을 이루는 요소는 18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물질이 자체 분열하여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모든 물질은 속도는 다르지만 분열 속도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오늘은 몸과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마음이 어떻게 몸을 움직이게 하는가를 잘 관찰해야 합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물질이 몸을 움직인다는 것을 이해하면 되는 겁니다. 제가 오래전에 미얀마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해 봤는데, 우자나까 스님이 지도하셨습니다. 하루는 스님이 “손을 들려는 마음을 내 봐라” 하시더군요. 그 순간 저의 손이 번쩍 들렸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만, 저는 마음이 몸을 움직인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그 뒤로도 마음을 내면 몸을 움직이는 마음의 물질이 생성되는 것을 여러 번 관찰하고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수행을 깊이 하시는 분들은 어렵지 않게 느끼고 아는 것입니다.

마음을 내면 몸이 움직인다
결국 우리의 몸은 마음의 작용을 통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가? 마음도 두 가지 속성에 따라 움직입니다. 첫 번째 속성은 마음은 언제나 가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멍하게 있으니까 마음의 작용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바로 그 멍한 곳에 가 있습니다.

존재라는 것은 몸이 있고, 마음이 있고, 마음이 가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은 항상 대상이 있기 때문에 업에 따라서 그 대상이 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임종시에 나타나는 표상이 바로 다음 생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죽기 전에 천상이 보이는 사람은 천상으로 가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 나오는 표상은 3가지입니다. 자신의 업이거나 업에 의한 행위거나 그 행위의 대상입니다. 그런 것들이 표상으로 뜨는 겁니다. 업은 무수한 양으로 형성됩니다. 우리는 지금 막연히 살아있다고 생각하지만, 순간순간 생사를 반복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오온의 생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이 삶입니다. 그런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업이 마음으로 전달되는 겁니다. 그 무수한 업의 양에서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것은 보다 ‘강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강한 업이 다음 생의 표상으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려면 수행을 통해 자신의 표상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마음은 한 번에 한 모습을 봅니다. 마음이 좋은 곳에 가 있으면 좋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면 편하고 행복하고 건강해집니다. 마음을 어디로 보내느냐 하는 것이 삶의 방향과 질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학생이 있는데, 음악듣기와 공부,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공부가 되다가 음악을 듣다가 하는 작용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마음의 속성은 마음이 어느 쪽으로 자꾸 가면 그쪽으로 길이 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관음정진을 처음 할 때는 잘 안되었지만 자꾸 하면서 점점 쉬워지는 것을 경험하셨을 겁니다. 그것이 길이 나기 때문입니다. 길이 난다는 원리는 우리 속에 입력된 것이 올라오는 것인데, 많이 입력되어 있는 것이 먼저 올라옵니다. 미국사람에게는 영어가 많이 입력되어 있으니까 말을 하고자 할 때 영어가 나오는 겁니다. 마음은 언제나 대상의 영향을 받고, 한 방향으로 가며, 반복되면 그쪽으로 길이 납니다. 이게 마음을 아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좋은 대상으로 마음 보내기

이런 원리로 몸과 마음을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마음을 좋은 대상으로 가도록 해야 합니다. 좋은 대상은 다른 것이 아니라 현재입니다.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순간의 대상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에 집중합니다. 탐진치가 없는 마음을 유익한 마음이라 하는데, 유익한 마음에서는 좋은 인연을 형성하게 되는 좋은 물질을 19가지나 생성한다고 합니다. 탐진치가 없는 마음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현재에 집중하면 됩니다. 하루 종일 자신의 행위에 집중한다면 무탐 무진 무치의 마음으로 분명한 앎이 생깁니다. 분명한 앎이 생기면 모르는 것을 모르는 줄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엉뚱한 집착과 탐욕도 생기지 않게 되니 지혜를 쌓는 삶이 됩니다.

관음정진을 많이 하는 분 가운데 과거 생을 보는 분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삼매에서는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작용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을 아는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행을 하여 매순간 집중하고 완전한 앎을 성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삼매를 닦으면 궁극적인 물질과 궁극적인 정신을 볼 수 있고, 생과 사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전현수 박사는
경남고등학교와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양대 의과대학에서 신경정신과 석사와 박사과정을 수료하여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순천향대 신경정신과 외래교수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신치료학회 회원, 미국 임상 최면학회 정회원,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이다. <울고 싶을 때 울어라>, <노동의 가치, 불교에 묻는다>(공저), <정신과의사가 붓다에게 배운 마음치료이야기> 등의 저서와 <붓다의 심리학> 등의 역서를 냈다.

글·사진 : 임연태 편집주간  mian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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